원조 아이돌 미소라 히바리에서 ℃-ute까지
태동기
‘아이돌(idol)’이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나 되어서의 일이다. 따라서 그 이전에는 ‘아이돌’이라고 불렸던 가수들은 없었다. 그러나 비슷한 개념의 ‘어린 여가수’들은 계속 존재해왔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1930~1940년대의 리샹란(이향란, 일본명 야마구치 요시코)을 여성 아이돌의 시조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패전 후에 등장한 전설의 가수 미소라 히바리(1937~1989)를 원조로 치고 있다. 1946년 아홉 살의 나이로 무대에 서기 시작해, 영화와 무대를 오가며 온 국민을 사로잡았던 그녀의 활약상은 일본 아이돌의 초석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의 ‘아이돌’의 모습을 다진 것은 1970년대 초반에 데뷔했던 미나미 사오리, 고야나기 루미코, 아마치 마리의 3인방이었다.
성장기
3인방의 활약에 힘입어 젊은 여가수들의 입지는 점차 넓어졌다. 그 뒤를 따라 이와사키 히로미, 오타 히로미, 캔디즈 등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1973년 데뷔한 야마구치 모모에는 나이를 뛰어넘은 목소리와 가창력 그리고 전성기 때의 결혼과 은퇴로 화려한 전설을 남기며 아이돌 전성시대의 시발주자가 되었다. 또한 1976~1978년 사이에는 단기간의 임팩트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2인조 ‘핑크레이디’가 중독성 강한 노래와 유니크한 안무를 바탕으로 각종 사회현상을 일으키며 짧고 굵은 전성기를 누렸다.


오타 히로미의 최고 히트곡 '목면 손수건' 도발적인 가사로 승부를 걸어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야마구치 모모에의 2번째 싱글
아이돌 전성기
1980년대의 일본 연예계는 아이돌들이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시기였다. 1978년 시작된 전설의 프로그램 <더 베스트 텐> 등 음악 프로그램들은 끊임없이 화려한 스타들을 요구했고, 세련되게 다듬어진 아이돌 스타들이 그 기대에 부응했다. 이 198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가 마쓰다 세이코. 살아 있는 ‘정통파 아이돌’인 그녀는 1970년대의 상징이었던 야마구치 모모에의 은퇴와 맞바꾸듯이 1980년 데뷔하여 일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1982년 데뷔한 ‘가희’ 나카모리 아키나와의 치열한 라이벌 구도는 시너지 효과를 내어, 비단 젊은 남성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만들었다.
그 밖에도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아이돌 스타들이 1980년대에 등장했다 사라졌다. 그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1985년 데뷔한 ‘오냥코 클럽’. 이들은 철저하게 훈련되고 다듬어진 슈퍼스타 아이돌들과 달리 ‘친근한 아마추어리즘’을 무기로 삼았다. 그야말로 ‘초짜’인 여중고생들을 바로 TV에 출연시키는 전략으로, 대부분의 멤버는 특정 연예기획사에 소속조차 되지 않은 아마추어들이었다. 이들의 뒤에 최대 민방사인 후지TV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10대 때의 마쓰다 세이코(좌)와 나카모리 아키나(우)
아이돌 암흑기
‘오냥코 클럽’은 개개인의 재능이 뒤처져도 전략만 좋으면 히트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었지만, 반대로 아이돌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의미를 퇴색시키고 아이돌 시장 자체를 붕괴시켰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결국 버블경제가 끝나고 1990년대에 접어들자, 아이돌의 전성시대는 거짓말처럼 무너지기 시작한다. 오냥코 클럽이 낳은 많은 부작용들과 함께, J-ROCK이라 불린 밴드 붐에 의해 아이돌 시장은 대폭 축소되었다. 그나마 오냥코 출신의 구도 시즈카나 나카야마 미호, 고이즈미 쿄코 등이 명맥을 이어가는 기간이 몇 년간 지속되었다.


건강하고 활발한 이미지로 90년대 중반의 상징 아무로 나미에
시대를 풍미한 고이즈미 쿄코
부흥기~현재
‘아이돌 빙하시대’를 타개한 것은 역시 따뜻한 지방에서 온 이들이었다. 오키나와 출신의 아무로 나미에와 스피드가 바로 그 주역들. 이들은 과거처럼 캐릭터를 과도하게 만들거나 하지 않고 실력으로 승부하는 모습으로 엄청난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들로 인해 다시 살아난 ‘10대 여자 가수 시장’에 전통적인 아이돌의 모습을 다시 살려낸 것이 바로 ‘모닝구 무스메’. 오디션 낙선자들의 모임이라는 점 등 친근감으로 시작한 이들은, 점차 오냥코 클럽 등 선배 아이돌들의 장점들을 적절히 섞는 전략으로 ‘국민 아이돌’의 칭호까지 얻으며 활동 10년째라는 롱런에 성공했다. 이들의 소속사인 업프론트 에이전시(UFA)에서는 ‘아이돌 머신’ 마쓰우라 아야부터 올해 데뷔해 인기 상승 중인 ℃-ute까지 수많은 아이돌들이 배출되어 음악업계 불황시대에 아이돌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UFA 이외의 소속사에서 나온 아이돌들은 거의 실패하거나 단명에 그치고 있어 일본 음악계에서 전통적인 ‘여성 아이돌’의 부흥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허유성

매거진 드라마틱 2007년 12월호용 원고.
사진은 판권기한이 끝난 사진이나 웹상에 공개된 공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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